탈출은 지능순? 개미들이 한국 증시를 등지는 진짜 이유

“국장(국내 주식) 탈출은 지능순이다.” 최근 투자 커뮤니티에서 자조 섞인 농담처럼 도는 이 말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닌 생존 법칙이 되어버렸다. 동학개미운동의 열기는 식은 지 오래고, 투자자들은 짐을 싸서 미국 증시로 떠나는 ‘이민’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애국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한국 주식시장이 개인 투자자들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넘어 ‘지뢰밭’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꼽은 국장의 죄악들을 들여다보면, 이 시장이 과연 ‘투자’를 위한 곳인지, 대주주의 ‘사금고’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주주는 없고 ‘오너’만 있는 나라: 거버넌스의 붕괴

한국 증시의 가장 큰 고질병은 회사의 주인이 주주가 아닌 ‘회장님’이라는 점이다. 내부거래로 자회사 실적을 부풀려 상장시키고, 알짜 사업부만 떼어내 ‘물적분할’로 중복 상장하는 행태는 K-증시의 전매특허다. 모회사의 가치를 믿고 투자한 주주들은 빈 껍데기만 남은 주식을 쥐고 피눈물을 흘리지만, 이를 제재할 법도 제도도 없다. 주주총회는 요식행위다. 소액주주들이 아무리 반대해도 대주주의 뜻대로 강제 처리되는 구조 속에서 주주 민주주의는 사망했다. 여기에 검증되지 않은 2세, 3세들이 세습 경영을 이어받아 회사를 말아먹어도 자리는 보전된다. 오너 일가의 배를 불리기 위해 주가는 억눌려야만 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이다.

짜고 치는 고스톱: 정보의 비대칭과 불공정 게임

개인 투자자들은 언제나 ‘설거지’ 담당이다. 호재성 공시는 장이 끝나고 나오거나 너무 늦게 올라오는데, 기관과 외국인은 이미 실적 발표 전 정보를 입수해 유유히 빠져나간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각도는 공매도에서 정점을 찍는다. 개인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진입 장벽을 쳐놓고, 기관과 외국인은 무제한에 가까운 공매도로 주가를 찍어 누른다. 명백한 작전주나 주가 조작이 적발되어도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니, 사기꾼들에게 한국 증시는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의 천국이다.

매력 없는 상품: 저질 기업의 난립과 주주 환원의 부재

시장의 질적 저하도 심각하다. 상장 기준이 얼마나 낮은지, 대전의 유명 빵집 ‘성심당’보다 매출이 적은 기업들이 버젓이 상장해 투자자들의 돈을 빨아들인다. 좀비 기업은 퇴출되지 않고 연명한다. 어렵게 수익을 내는 기업을 찾아도 문제다. 미국 기업들이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고 분기마다 배당을 늘릴 때, 한국 기업 중 제대로 된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을 하는 곳은 손에 꼽는다. 주가가 오르면 팔 생각만 하지, 주주와 이익을 나눌 생각은 없다. 투자 상품으로서의 매력도 떨어진다. 개별 종목이나 섹터 레버리지 상품이 전무하다시피 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싶은 스마트한 투자자들을 수용하지 못한다.

결론: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개미 엑소더스’는 멈추지 않는다

삼성전자를 팔고 엔비디아를 사는 것은 배신이 아니다. 자본은 더 공정하고, 더 투명하며, 주주를 우대하는 곳으로 흐르는 속성을 가졌을 뿐이다. 기업 쪼개기로 주주 가치를 훼손하고, 정보 비대칭으로 개인의 뒤통수를 치며, 주주 환원에는 인색한 한국 증시. 이 시스템을 뜯어고치지 않는 한, “국장은 안 하는 게 정답”이라는 뼈아픈 조언은 계속해서 유효할 것이다. 투자자들은 더 이상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호구’가 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텅 빈 한국 증시 거래소 전광판을 뒤로하고 비행기(미국행)를 타러 가는 개미들의 뒷모습 일러스트.

댓글 남기기

인덱스